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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 칼럼] 노인 고독과 극단 선택
  • 이창준 기자
  • 등록 2025-08-17 16:46:55
  • 수정 2025-08-17 16: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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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시대이니 노인이 많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노인이 되어 병이 들고 죽음에 이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일 것이다.


노인이 행복한 나라가 최상의 복지국가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의 노인은 일생 동안 희생하고 일만 하면서 나라 발전을 이룩한 애국자임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가족의 무관심 속에 허탈한 만년(晩年)을 외롭게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흔히 말하는 인생의 3대 불행은 초년 성공, 중년 상처, 노년 빈곤이다. 이 가운데 '노년 빈곤'은 죽음보다 무서운 현실이기에 문제가 심각하다.


이는 초고령 사회의 비극이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더욱 극심한 편이라고 한다. 하루 10.5명이 극단 선택을 한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생명은 귀천이 없다. 노인의 죽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젊은이와 노인의 생명에 차이를 둔다면 이는 야만사회이다. 인간의 수명 가치는 물건처럼 내용연수로 따지는 것이 아니다.


말로만 노인을 '어르신'이라고 부르라고 하면서 대책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노인과 바다>를 <어르신과 바다>로 바꾼다면 소설의 묘미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떠들 것이 아니라 노인에 대한 집중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니어의 성(性)생활에 대한 관심조차 없는데 어떻게 성숙한 선진국이 된다는 말인가?


국회의원과 보좌관의 숫자를 대폭 줄이자. 인구 대비 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고, 비생산적 인데 비하여 혜택은 엄청나다. 그 재원을 노인 지원 정책에 투입할 것을 제안한다.


지금의 노인은 우리나라가 짚신을 신다가 고급 구두를 신을 수 있도록 험한 일을 했던 희생의 세대이다.


전철을 탈 때마다 경로 우대석 노인의 모습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노인 표시'도 굽은 허리에 지팡이가 그려져 있다. 차라리 장미꽃 두 송이로 표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노인들은 한 시대를 살면서 부모 세대에 효를 다 했고 자녀 교육에 허리띠를 졸라 매었다. 노년에는 대우도 받지 못하고 독거노인으로 지내고 있으니 인생의 비애가 어떨까. 처절한 그 모습을 상상해 보라!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노인이 없도록 적극적인 돌봄과 정책이 필요하다.


노인의 경험을 중히 여겨 간단한 일거리라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공원에 모여 앉아서 마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하릴없는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 답답하다. 


노인의 경험은 도서관 하나와 같다고 한다. 그들을 외면하거나 선거 때마다 폄하하는 발언을 한다. 그들은 늙지도 않고 죽는지 여간 궁금하지 않다.


어른 공경을 근간으로 삼았던 우리 민족의 미덕이 압축성장의 그늘에 가려져 한숨으로 변하고 말았으니 여간 안타깝지 않다.

 

주름진 얼굴이지만 잔잔한 웃음이 번지는 어르신이 많아지도록 모두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경국(칼럼니스트. 사단법인 박약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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