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반창꼬뉴스 발행인)한국인은 ‘대식가(大食家)’였다. 수많은 역사적 기록이 증언한다.
3세기 진수의『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고구려인을 “성질이 급하고 잘 먹는다(能食)”라고 적었고,『구당서』에는 신라인이 “술을 즐기며 음식을 많이 먹는다”라고 했다. 고려 시대 송나라 사신 서긍은『고려도경』에서 “연회에서 음식이 수십 가지 차려지고 손님이 배불러도 계속 권한다”라고 기록했다. 조선시대엔 네덜란드인 하멜은『표류기』에서 조선 사람들이 “산더미 같은 밥을 먹는다”라고 적었다.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도 “조선인의 밥그릇 크기는 유럽인의 상상을 넘어선다”고 전했다. 이와 같이 외국인의 눈에 한국인은 오래전부터 ‘대식가’였다.
우리 속담에도 대식(大食)은 긍정적 가치로 담겼다. '밥 많이 먹는 놈이 일도 잘한다', '밥 많이 먹는 집이 잘 산다', '밥상은 푸짐해야 흥이 난다'라는 것은, 먹는 것이 곧 힘과 풍요, 공동체적 기쁨을 의미했음을 보여준다.
국가 운영에도 이 인식은 깊이 자리했다. 조선의 기본 법전인『경국대전』은 곡식의 유통과 비축을 법으로 규정하며, 흉년이 나면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휼하도록 했다. '民以食爲天(민이식위천) :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원칙은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 기반이었다. 아울러 대식(大食)은 개인의 식탐이 아니라, 백성의 생존과 나라의 안정을 지탱하는 상징이었다.
근대화시대만 해도 가정에서 쓰던 밥그릇과 국그릇, 수저는 오늘날보다 훨씬 컸다. 밥그릇은 요즈음 공깃밥 두세 그릇 분량이었다. 국그릇은 밥그릇과 비슷하거나 더 컸다. 수저 길이는 길고 서너 숟가락이면 요즈음 밥 한 공기 가량은 됐다.
이처럼 가난한 시절임에도 '밥은 듬뿍 먹어야 힘이 난다'는 인식이 강했다. 식기의 크기 자체가 ‘밥심’으로 하루를 살아낸 한국인의 삶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식가’라는 말은 다소 다른 뉘앙스로 다가온다. 풍요의 상징이던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과식이 비만, 성인병, 환경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1인 가구와 웰빙 문화의 확산은 ‘소식(小食)’을 미덕으로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국인의 눈에 한국 식탁은 푸짐하다. 반찬이 가득한 한식 상차림과 “많이 드세요”라는 권하는 말은 환대의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준다.
결국 ‘대식가’라는 표현은 한국인의 단순한 허기가 아니라, 밥을 하늘처럼 여겨온 역사적 기억과 문화적 자산을 상징한다. 푸짐한 밥상 속에는 생존을 지켜온 힘, 공동체를 잇는 정, 그리고 나라를 유지한 제도의 흔적이 함께 담겨 있다. 그것이 바로 한국인의 밥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