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前 KBS 기자)《논어(論語)》'공야장(公冶長)' 편에는 공자(孔子)가 이런 말을 했다고 나온다.
"영무자(甯武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로웠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은 듯이 했다. 지혜로운 것은 미칠 수 있지만 어리석은 듯함은 미칠 수 없었다. (甯武子, 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
나라에 도가 있다는 말은 자신의 역량을 알아주는 임금이 있다는 뜻이고, 그런 임금 앞에서는 마음껏 역량을 펼치다가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어리석은 척 숨어 자신을 지킨다. 공자는 그러한 행동을 한 영무자를 지혜롭다고 추켜세운다. 공자는 어째서 이를 대단하다 한 걸까?
이 이야기는 본질을 보아야 한다.
처음에 영무자는 당시 권력 싸움에 밀려 핍박을 받던 위(衛) 성공(成公)을 따라 여러 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충성을 다했다. 이 덕분에 무사히 권좌로 돌아온 성공은 공을 세운 영무자를 제쳐놓고 다른 사람에게 정치를 맡겼다. 이로 인해 영무자는 무척 서운하고 배신감을 느꼈을 것인데, 그는 원망하는 대신 어리석은 듯 자신을 감추고 숨어 살며 자신의 영달과 권력을 다투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 부분을 칭찬한 것이다. 자신의 공을 인정받지 못해도 욱하는 마음을 품지 않고 숨어살며 임금에 대한 충성을 지킨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영무자의 처신은 제 한 몸만 잘 되려고 하지 않고 진정으로 임금을 위한 충성이라면 공을 다투고 나라를 어지럽혀서는 안된다는 점을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논어》'헌문(憲問)'에도 “나라에 도가 있을 적에는 굽히지 말고 소신껏 말도 하고 행동도 해야 하겠지만,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행동은 소신껏 하되 말은 겸손하게 해야 한다.(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라는 공자의 말을 전한다.
《시경(詩經)》'대아(大雅) 증민(蒸民)'편에서는 "현명하고 또 밝아서 그 몸을 잘 지켜, 온종일 쉬지 않고 한 임금만 섬기누나.(旣明且哲, 以保其身. 夙夜匪解, 以事一人)"란 시가 있다. 여기에서 명철보신(明哲保身)이란 말이 나왔다. 주희는《중용장구(中庸章句)》제27장에서 “나라에 도가 행해질 때에는 자신의 뜻을 표현하여 나라에 보탬이 되게 해야 하겠지만,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에는 침묵으로써 자신의 몸을 보전해야 할 것이다.《시경》에서 그런 말을 했다"고 설명한다. 영무자의 행동을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지혜라고 흔히들 말한다. 다시 말하면 '현명하고 명철하게 말을 하고 행동을 해서 자기 몸을 잘 보전하는 것'이 명철보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공자의 말의 원 뜻과 상관없이 세상 사람들은 권력이 있고 사람들이 박수를 칠 때 떠나서 일신의 욕을 보지 않는 것을 '명철보신'이라고 말한다. 험난한 세상에서 자기 몸을 잘 지키며 재앙을 면하는 것이 제일이며 그게 곧 '명철보신'이라는 것이다.
'어부사시사'란 시조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는 풍류를 즐기는 문인이라기보다는 젊을 때부터 강직한 뜻을 품고 세상을 바르게 만들고 싶어 하는 열혈청년이었다. 광해군 8년인 1616년 12월에 나이 30세로 벼슬도 없는 진사 신분이었지만 당시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권신 이이첨의 횡포를 통렬히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유명한 '병진소(丙辰疏)'이다.
"신하 된 자가 만약 나라의 권세를 한 손에 쥐게 되면, 자기의 복심(腹心)을 중요한 자리에 배치하여 위복(威福 상벌(賞罰))의 권한이 자기에게서 나오게 할 것입니다. 설사 어진 자라도 이렇게 하면 안 될 것인데, 더군다나 어질지 못한 자가 이렇게 한다면 나라가 또한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지금 성상(聖上)께서 임어(臨御) 하시어 군군신신(君君臣臣 임금은 임금으로 신하는 신하로 다르게 처신해야 한다) 하는 때이니 당연히 이와 같은 사람은 없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이 삼가 예조 판서(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이 하는 짓을 보건대, 불행히도 여기에 근사(近似) 하기에, 신은 삼가 괴이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신이 삼가 보건대, 근래에 고굉(股肱)과 이목(耳目)과 후설(喉舌)의 역할을 맡은 관원을 비롯해서, 논사(論思 글을 지어 올리는 부서)와 풍헌(風憲 사헌부나 사간원 )과 전선(銓選 인사 선정권자)의 책임을 담당한 관원들치고 이이첨의 복심(腹心)이 아닌 자가 없습니다. 그들의 무리가 아니면서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자들이 간혹 한두 사람 정도 있기도 합니다만, 그들 역시 사람됨이 물러 터지고 행동거지가 닳고 닳아서 시대 상황을 살펴 알랑거리기나 하며 세상 물결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자들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대각(臺閣)의 계사(啓辭 대간들이 올리는 글)라는 것도 전하께서는 반드시 대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사실은 이이첨에게서 나온 것이며, 옥당(玉堂)의 차자(箚子)라는 것도 전하께서는 반드시 옥당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사실은 이이첨에게서 나온 것이며, 전조(銓曹 인사담당관의 추천)의 주의(注擬)라는 것도 전하께서는 반드시 전조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사실은 이이첨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혹은 그의 속마음을 미리 엿보아 그렇게 하기도 하고, 혹은 그의 지휘를 받아 그렇게 하기도 하며, 혹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도 반드시 그에게 물어본 뒤에 행하곤 합니다.
아, 이이첨의 도당은 날이 갈수록 아래에서 번성하는데 반하여, 전하의 형세는 날이 갈수록 위에서 고립되고 있으니, 어찌 아슬아슬하게 위태롭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하를 위해서 발언하는 자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 우리나라 3백여 고을 가운데 정말 의로운 인물이 한 사람도 없단 말입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성명(聖明)께서는 어리석은 신이 올린 전후의 사설(辭說)을 자세히 살피시어 더욱 밝게 헤아려 주소서. 그리하여 먼저 이이첨이 위복(威福)의 권한을 제멋대로 희롱한 죄를 바루시고, 다음으로 유희분과 박승종이 임금을 잊어버리고 나라를 저버린 죄를 다스리소서. 그리고 기타 이이첨의 복심과 도당은 당여(黨與)를 모조리 제거하는 율(律)을 적용하거나, 협박에 못 이겨 따른 자들을 용서하는 법을 쓰도록 하소서. 그러면 종묘사직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윤선도의 병진소(丙辰疏)
이렇게 이이첨이 조정을 휘어잡고 모든 관리들을 자신의 뜻대로 주무르는 전횡을 하고 있다고 목숨을 건 상소를 올린다. 진사 신분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권신 이이첨의 횡포를 규탄하고, 영의정 박승종과 광해군의 처남 유휘분이 허수아비처럼 이이첨을 묵인한다는 상소를 올렸으니 온 조정에 난리가 났다. 그 상소는 왕에게 전달도 되지 못했다. 최고 실세를 건드렸으니 무사할 리 없었는데 다행히도 참형만은 피하고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를 갔다. 곧 부산 기장으로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풀려났고 42살에 문과 급제하여 예조정랑 등을 역임했다. 그러다가 병자호란 때에는 강화도에 가서도 인조를 알현하지 않았다고 해서 영덕으로 귀양을 갔다.
윤선도의 삶은 곡절이 많았다. 결정적으로는 윤선도가 73세이던 1659년 기해년에 효종이 세상을 떠나고 유명한 '예송논쟁'이 벌어졌을 때 송시열 등에게 밀려 평안도의 삼수라는 데로 귀양을 간 것이다. 이 때에 후배 학자인 안서익이 이런 윤선도의 처지를 동정하면서 명철보신을 잘 못했다고 지적하자 여기에 다시 발끈한다.
"내가 말한 것이 옳으면 회오(悔悟) 하여 전설(前說)을 고치면 될 것이요, 만약 내 말이 옳지 않으면 가 어리석어서 의리를 모른다고 하며 일소(一笑)에 붙이면 그만일 것이네. 그런데 이와 같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기필코 나를 사지(死地)에 몰아넣으려고 하니, 이것이 어찌 군자의 마음이겠으며, 내가 일찍이 예측이나 했던 일이겠는가.
그대가 명철(明哲)을 가지고 나를 책하였는데, 이 의리를 나는 알지 못하겠네. 아, 말세(末世)에 이욕(利慾)이 기승을 부려서, 의리를 물고기로 여기고 이욕을 곰 발바닥으로 여기는 자들이 온통 세상에 횡행하고 있으니, 어쩌면 이렇게도 명철이 많단 말인가. “뜻있는 선비는 자기의 시신(屍身)이 도랑에 버려지는 한이 있어도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항상 생각한다.(志士不忘在溝壑)”라는 말, “죽음으로 지키면서 도를 잘 행할 줄 알아야 한다.(守死善道)”라는 말, “죽도록 변치 않는다.(至死不變)”라는 말이 바로 성인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성인이《춘추(春秋)》를 지은 것도 명철의 도리에 위배된다는 말인가...안생 서익에게 답하는 별폭 신축년(1661, 현종2) 9월 (答安甥瑞翼別幅 辛丑九月)"
윤선도에게 있어서 명철(明哲)이라는 것은 세상이 어긋나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지. 일신의 보존을 위해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꾸짖음이었다. 당시 세상에서 옳은 소리 하는 사람이 그리 없고 전부가 자기 몸을 사리는 명철보신만 한다는 엄한 꾸짖음이었다.
조선시대가 선비들의 기강이 엄해서 현명한 왕들은 신하들의 옳은 말을 많이 들어주었지만 그렇지 못한 왕들은 권신들의 손아귀에 잡혀서, 그 권신들이 조정의 모든 눈과 귀와 입을 가로막고 있을 때에 그것을 헤쳐나갈 수가 없었다. 그것이 조선이란 나라의 건전한 발전을 막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사람들의 눈과 귀가 막힌 데다가 권력을 견제할 사람이 없으니 일당 독재가 되어 결국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니던가?
그러한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아 현대에도 집권을 하는 사람들은 전 정권 사람들을 온갖 핑계와 이유로 모조리 쫓아내고 자기들만의 눈과 입과 귀를 만들어 정권을 유지하려 하지만 지도자가 이를 가려서 옳은 길로 가지 않으면 결국에는 다시 정권을 잃고 만다.
명철보신(明哲保身)은 자기 한 몸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맑고 밝게 이끄는 명철함이어야 하고 그것으로서 나라와 국민들이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으로 보신일 것이니, 과거 역사에서 국민의 입을 막고 반대편을 쫓아내는 정권들이 오래 가지 못했음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그러한 역사가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