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巫敎)는 만물은 살아있고 그것은 인간과 동일한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이루는 모든 만물은 그것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개념은 선한 영과 악한 영이 공존하는 샤머니즘의 세계관으로 이어지고 그 영적인 존재들이 인간의 일에 개입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모든 자연은 살아있고 모든 물체는 심지어 자연현상까지도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모든 물체에 신격을 부여하여 기원을 하거나 위협을 하기도 한다. 즉 모든 자연이 살아있는 것이고 그 속에 살아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살아 있지 않은 것들도 생명의 힘인 기(氣)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무교의 사상은 생명에 대한 존중과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마치 인간처럼 대하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무교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단일성 원칙이고, 또 하나는 세계의 원초적인 속성인 조화의 원칙이다. 인간은 자신의 판단으로 세계를 개조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모든 자연이 살아있는 존재이기에 무교에는 많은 금기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인간이 의도치 않더라도 어떤 물체에서 생명의 기운을 해치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사상 바탕에서 발생한 무교의 정신은 한마디로 생생지생(生生之生)이다.
생생지생(生生之生)이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유기체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정신이다. 즉 생명의 유무와 관계없이 그 위치에 사물이 존재하는 가치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는 정신이다. 그래서 사물을 신성시하고 신격화하였다.
하늘에는 천신(天神), 땅에는 지신(地神), 바다에는 용신(龍神), 돌에는 석신(石神), 나무에는 목신(木神), 흙에는 토지신(土地神) 등 다양한 신들을 모시게 되었고 그 결과 무당은 많은 신을 숭배한다고 만신(萬神)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민족의 시발점인 삼신의 사유체계에서 도출해 낸 천부경(天符經)의 일석삼극의 원리가 바로 생생지생이다.
이 생생지생의 3의 사유체계는 천부경의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이 되어 4라는 사유체계로 발전하여 원형이정(元亨利貞)이 되었고, 원형이정은 춘하추동 사계절의 원리와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되었다.
즉, 원형이정은 사물(事物)의 근본 원리로, 원(元)은 만물의 시(始)로 춘(春)에 속하고 인(仁)이며, 형(亨)은 만물의 장(長)으로 하(夏)에 속하고 예(禮)이며, 이(利)는 만물의 수(遂)로 추(秋)에 속하고 의(義)이며, 정(貞)은 만물의 성(成)으로 동(冬)에 속하고 지(智)가 된다.
사람(四覽)이란 이렇게 원형이정, 춘하추동의 원리를 알고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지키는 인간을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한다. 원형이정과 춘하추동을 살피고 인의예지를 아는 인간을 사람이라고 하였으니, 사람이란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한 가운데 믿을 신(信)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생생지생이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전체의 개념으로 바로 단군의 사상인 성통광명, 홍익인간, 재세이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생생지생의 사유체계로 이루어진 무교의 신들은 높고 낮음도 없으며, 또한 서로 간섭하고 명령하는 일도 없다.
생생지생의 사유체계 속에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존재가치가 똑같다는 것이다.
또한 생생지생의 3의 사유체계는 지구상의 모든 종교의 기본사상이 되었다. 불교의 불·법·승 삼보, 기독교의 성령과 성부와 성신의 삼위일체, 유교의 삼극지의(三極之義) 등이다.
생생지생이란 무교의 정신이 잠재되어 있는 우리 민족은 그 어떤 종교가 유입되어도 거부하지 않고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한국은 종교 백화점이 되었다.
무교의 생생지생은 화합과 조화를 기본으로 하는 사상이라면 상생(相生)은 2분 법적 논리로 음양사상이며 흑백논리이다. 다분히 서양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은 조화의 미덕을 잃어버리고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극단적인 논리만 팽배해 있다.
여야 정치권에서 늘 하는 말이 상생(相生)의 정치다. 상생의 정치란 여야만 합의하면 된다는 논리다. 여야 정치인들은 상생의 정치가 아닌 생생지생의 정치를 논해야 한다. 여야의 합의가 과연 국민을 행복하게, 국가에 이익이 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상생도 이뤄내지 못하는 정치권이 과연 생생지생을 이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예전에 통 큰 치킨을 대기업 마트에서 판매한 적 있다. 그 당시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골목 통닭 가게를 다 죽인다고 난리가 났다. 정부에서 상생 경제를 하라고 하여 결국 대기업 마트에서 통 큰 치킨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결과 가성비가 훌륭했던 통 큰 치킨을 구매하던 시민들은 다시 비싼 치킨을 사 먹어야 했다. 이것이 상생의 폐단이다.
생생지생은 두 집단의 합의가 제 삼의 집단도 유익해야 한다는 정신이다. 이것이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이다. 홍익인간을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배자의 시각으로 풀이한 정신이다. 이 시대의 홍익인간은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도 실천할 수 있도록 다시 해석해야 한다. 즉 홍익인간에서 사이 ‘間’을 해석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를 널리 이롭게 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신이고 사상이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종교 백화점이 되어 세계 각국의 종교가 다 들어와 있다. 또 어떤 종교가 들어와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뿌리를 내린다. 이런 현상은 바로 생생지생이 밑바탕이 된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봇물 터져 패닉현상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모두 생생지생의 정신을 망각하고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에게 생생지생의 정신을 다시 일깨워주어야 한다.
생생지생은 무교의 정신 이전에, 인류가 평화를 위하여, 약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 시대 반드시 실천해야 할 기본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생생지생은 우주의 순리와 질서에 순종하고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인류의 보편적인 정신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