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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 칼럼} 사랑은 찰나였다
  • 이창준 기자
  • 등록 2025-06-11 08: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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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시인 권옥희님의 세번째 시집 <사랑은 찰나였다>를 다시 꺼내어 읽어 보다. 필자는 시를 좋아하지만 시를 써 놓고 보면 수필 같은 느낌이 든다. 


많은 시인께서 시집을 내면 보내주니 정독을 하는 편이다. 마음이 어수선하여 시를 읽으면서 다독여 보고 있다.

 

시인은 詩를 쓰고 필자는 에세이를 쓰면서 출향인으로 이미 문학으로 정이 들어 설사 한 줄의 낙서라도 감동이 발하니 구구절절 마음이 녹아내리다.


사랑은 동사이기도 하지만 시인은 찰나(刹那)로 보았다. 찰나는 겁(劫)과 대비되는 불교 용어다. 찰나는 75분의 1초이니 그야말로 눈 깜빡 할 사이보다 짧다.


겁은 찰나가 쌓여서 생긴다. 시인의 말에 코로나 역병 2년 사이에 요양원 병실에서 어머니를 보낸 아픔이 남아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종교'인 필자로서는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겨울 저물녘에 쓴 짧은 시인의 말에 울림이 크다.


권옥희 시의 해설은 시인이신 문정영님이 해 주셨다. 같은 시인이니 행간의 단어를 용하게도 끌어 내어 독자에게 안내해 주고 있다.


詩는 파자(破字)를 하면 '절에서 쓰는 언어이다' 함축되어 간결하며 묵언이나 침묵같이 고요하면서 짧다.


필자는 시작노트가 생각보다 많은데 詩라기 보다 수필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어 혼자만 읽는다. 그것은 마치 노인이 갓을 쓴 채 자전거를 타는 모습처럼 보인다.


친구는 이 시집에서 중년의 마음 앓이와 어머니를 보낸 아픔을 새겼다. 잘은 몰라도 안동인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편이다.


비공인 통계이긴 하지만 이혼율이 낮은 곳이 안동지방일 것이다.

이는 선비정신과 양반의 DNA가 녹아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詩는 시시때때로 내 마음을 훔쳐 간다. 詩로서 마음을 훔쳐 가도 밉지를 않는 시인이다. 출판사는 시맥이다. 아마 詩의 맥脈을 어어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체로 독자는 책의 제목과 가격을 먼저 살피는 습성이 있다. 


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 있다. 천억대(현재는 3천억)의 대원각 부지를 법정스님께 보시하신 김영한(자야)에게 기자가 ''아깝지 않느냐?''고 세속적인 질문을 했다.


천하의 명답을 한다. 이는 백석의 시 한 구절 값도 못 된다고....

천상 백석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원초적 예능의 표현에 필자는 감정이 솟구치고 말았다. 울고 싶은 천하의 명답이 아닐까?


시집에 있는 한 편만 선정하여 마음을 더하여 본다.


"하늘빛이 내린다. 등 돌린 너의 어깨처럼 서늘하다 며칠째 먹먹한 하늘이 싫어서 나는 바다로 간다


서리가 내린다 내 가슴을 베어낸 너의 말처럼 싸늘하다 며칠째 먹먹한 마음을 달래며 나는 산으로 간다.


천천히 속을 비우며 사랑도 지우고 추억도 지우고 그냥 아무것도 안 보이는 먹지처럼 혼자가 되자고 바람을 조른다


바지랑대 몇 개로 지탱된 위태로운 나날들 그까짓 거 완전히 비워내자고 시간의 절벽을 헤매며 찢겨가던 가슴이 너덜너덜해진 뒤에야 낯선 제안처럼 네 모습이 들숨으로 들어온다


사랑은 찰나였다 내가 비워둔 자리에 나도 모르게 네가 서 있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사랑은 찰나였다'의 전문이다. 시인은 바다로 가고 또 산으로 가기도 한다.


요산요수(樂山樂水)를 동시에 느끼고 싶은 본연의 마음을 노정 시킨다. 시는 언어선택의 절묘함에 독자의 넋을 앗기게 한다.


마지막에 ''사랑은 찰나였다 내가 비워둔 자리에 나도 모르게 네가 서 있다''


중년의 모습이 녹아 있어 보인다. 세상 바빠 살다 보니 쏜살같이 지나버린 빈자리에 누군가가 같이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을 테다. 남편이든 아니면  타인이든 ......


이 시는 소리 내어 읽어보면 흐르는 마음이 길목을 지키는 듯 따뜻해져 옴을 느끼게 한다.


권옥희 시인의 대표 시집이 되지 않을까 싶다. 늘 바란다. 사계절 내내 많이 읽히어 지길......


이경국(칼럼니스트. 사단법인 박약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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