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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이동식의 역사 칼럼] (1) 역사를 읽는 이유
  • 이창준 기자
  • 등록 2025-08-12 10: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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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고에 들어가서 역사를 보려면 역사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생각이 먼저 정리되어야 할 터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1989년 5월 한 달 동안 필자는 우리 언론 사상 최초로 중국 실크로드를 다니면서 그 땅에 이어져 온 역사의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을 늘 생각했다. 그  때 들고가며 가끔 꺼내어 읽은 책이 우리나라 근대의 선각적 역사가인 단재 신채호( 申采浩 1880~1936)가 쓴 <조선상고사>라는 책이다. 단재는 그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활동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요, 조선사라 하면 조선 민족이 이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다."

 

다시 말하면 각자가 처한 환경과 조건에서 역사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즉 한국인은 우리 한국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역사란 말이다. 단재는 그 전까지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중국에서 형성된 고전적인 역사관에 따라 중국 역사만을 보다 보니 우리의 역사가 많이 실종되었기에 우리의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했다. 그렇지만 역사는 우리 한국에서만 보는 것은 조금은 일방적이고 편협할 수 있다. 역사는 인류라는 큰 주체를 상정하고 봐야 진정한 역사가 될 것이다. 


        거울.(청주 국립박물관)


역사라는 거울은 인간의 지나간 행동과 행위에서 선과 악을 구분해서 비춰준다. 우리는 역사에서 민족이나 인류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을 통해 그러한 잘못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일찍이 약관의 나이에 대사성을 지내는 등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을 날린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은 숙종 12년인 1686년 왕이 임석한 경연에서 역사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역사서에 기록된 것도 모두 이치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비록 이롭고 해로움, 옳고 그름, 다스려지고 어지러움, 흥하고 망한 기록이 수 천만 가지라서 궁구하기 쉽지 않을 듯 하지만 사건에 따라 그 이치를 연구해 보면 모두 다 그렇게 된 까닭이 있으며 모두 다 대처하는 방도가 있으니, 만일 잘 보고 터득하는 것이 있으면 사물의 이치를 궁리하여 도리에 밝아지는 공부가 어찌 이 밖에 더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한갓 섭렵하여 기억하고 읽을 뿐이라면 이치를 알거나 마음에 터득하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사로이 총명을 발휘하여 지식이나 넓히고 올바른 의지를 잃어 실제적인 공부를 해치는 수단이 되고 말 뿐입니다.” <農巖集(농암집)> 卷之十 講義 玉堂故事附 經筵講義

 

백호(白湖) 윤휴(尹鑴, 1617~1680)는 현종 13년인 1672년 여름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역사 속의 인물들의 공과를 논한다. 

 

사람들 말이, 천하에 쓸모 없는 물건은 없다고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물론이다. 타고난 재목 그대로만 이용한다면 천하에 버릴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착하지 못한 자도 역시 써먹을 곳이 있을까?”

했더니, 모두 하는 말이,

“천하에 제일 못쓸 것이 착하지 못한 사람인데 그것을 어디에다 써먹을 것인가.”

하였다.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를,

“천하에 제일 쓸모 없는 것은 중간치인 것이다. 냉하지도 않고 화끈하지도 않고 아무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내면서 취할 만한 좋은 점도 없고 그렇다고 꼬집어 말할 만한 악도 없는 그런 사람 말이다. 차라리 아주 불선한 사람은 그런 대로 써먹을 곳이 있는 것이다.”

했더니, 모두 이상하다는 듯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걸(桀)과 주(紂)가 지극히 불선했기에 탕(湯)과 무왕(武王)이 그들을 정벌하자, 하늘이 도와주고 백성들이 돌아오고 하여 천하를 통일해서 자손 만대에 전하였고, 항적(項籍)과 왕망(王莽)은 나쁜 중에도 더 나빠 한 고조(漢高祖)와 광무제(光武帝)가 각각 그들을 죽임으로써 천하를 진동시켰고 그 여풍이 백세를 두고 영향을 주어 한 나라 4백 년 사직이 유지될 수 있었으니, 그게 쓸모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뿐 아니라 전쟁과 병사 통솔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니 한 사람을 죽였는데 삼군(三軍)이 떨고 적국이 항복해 오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영웅이나 패주(伯主)들이 사업을 경륜하면서 천하를 차지하는 데 밑천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을 얻지 못할까 염려했던 것이며 나도 그래서 쓸모가 있다고 한 것이다. 윤휴 <풍악록(楓嶽錄)>

 

역사에서 작은 사건이라도 그 의미를 알면 버릴 것은 없다는 뜻이리라. 이제 우리가 동서고금의 역사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이 때에 우리는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인 여조겸(呂祖謙,1137~1181)의 말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서를 읽을 적에 잘 다스려진 것을 보면 잘 다스려졌구나 생각하고 어지러운 역사를 보며 어지러웠구나 라고 생각하는 등, 한 가지 일을 보고서 한 가지만을 아는 데에 그친다면 역사를 보는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역사를 읽을 때에는 마치 자신이 그 속에 있는 듯이 여겨, 어떤 일의 잘 되고 잘못됨, 어느 시대의 병화나 곤란을 보면 반드시 책을 덮고 만일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역사를 보아야 학문도 진보되고 지식도 높아질 것이고, 그래야만 유익할 것이다.” <文集(문집)>卷19 史說

 

결국 역사에서는 작은 사건에 깊이 매몰돼 사건의 의미를 놓치면 안 되며, 한 나라의 한 시대, 한 나라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성격을 파악하고 그런 큰 흐름 속에서 각각의 역사를 보고 보다 나은 역사를 위한 대책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에 기록된 역사를 보는 것은 어렵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바로 보기는 더 어렵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시대의 역사라고 보이지 않을 턱이 없다. 역사를 읽는 것은 바로 당대와 앞으로, 좁게는 우리 나라, 크게는 세계와 인류를 위한 가르침을 얻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역사야말로 가장 큰 정치라 할 것이다. 


이동식(前 K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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