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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의 30대 후반의 호기
  • 이창준 기자
  • 등록 2025-10-07 11: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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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시인)나의 30대 후반엔 서울시 은평구 불광중학교 학생들에게 3년간 매주 토요일 1시간(그때는 토요일도 등교하던 때였다) 시 창작 수업을 해 주고, 국가에서 년 700만 원씩, 3년 총 2,100만 원을 받아서 이 학교에 전액 발전기금으로 기부를 했다.


반듯하게 사시는 나의 족친 몇 분은 고향 모교에 매년 몇 천만 원씩 해서 몇 억을 장학금으로 내는 분도 계신데, 그에 비하면 이 금액은 그다지 크지도 않지만, 자잘하게 몇 군데 후원금을 보내고 있었던 젊은 30대 후반인 나로서는 그 당시 가장 큰 기부액이었다.


나와 같이 기부를 해 주신 분은 방송국에서 그 당시 상당히 알려졌던 MC 및 방송인 한 분(남성, 박경호 씨로 기억함)이 또 계시는데, 방송반을 맡아서 강의를 해 주시고, 나와 같이 전액을 기부하셨다. 나머지 토요일 주 1회 우리와 같이 외래 특강 하시는 분들은 모두 집으로 연봉을 가지고 가셨다.


가을에 시화 전시회를 할 때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은 나의 주머니를 털어서 시화 제작비용을 감당했고, 물론 달려가는 차 기름값도 내가 감당하였다.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에 발목이 잡히니 다른데 매일 출근하여야 하는 곳으로 제안이 와도 책임감 때문에 빠져서 갈 수가 없었다.


하여 천상 집으로 찾아오는 고교생 몇몇 개인 논술 지도만 하면서 1년만 하고 그만두려고 했더니. 교장 선생님께서 절대 안 된다고, 꼭 한 번 더, 그리고 또 꼭 1년 더, 하셔서 우리 큰 딸이 졸업하는 때까지 강의는 3년을 채우게 되었다.


문예반 학생 중에 가난해서 밥을 못 먹는 여자 아이가 있다고 해서 매월 30만 원씩 지원을 해 주기도 했다. 이 학생 이야기는 예전에 긴 스토리가 있어서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것이 있기에 여기선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겠다.


한창 돈을 향해 달려가던 나이에 이렇게 사는 나를 놓고 집안에선 세상 물정에 어둡고, 딴 세계의 사람처럼 희한(이상) 하게 산다고 한 소리들 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밥이야 먹고 살지만, 내가 여윳돈 형편이 넉넉한 사람이 아니었던 터라, 형제 부모도 이해가 안 가는 생활 방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일이 자랑스럽고, 잘 했다고 생각을 한다.


세상에 와서 악착같이 돈 나오는 구멍만 팠더라면, 이 나이에 와서 가슴이 얼마나 헛헛할 것인가 싶다.


한참 지난 뒤에 돌아보니 남들 보다 돈 계산에는 좀 더 어리숙하게 살았던 그것만이 복이 되었고, 그것만이 진정한 시인으로 산 나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 같다.


한창 꿈을 꿀 때 계획했던 것들을 다 이루지 못한 이 즈음에 서서,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날이 있다.


그러다가도 조금의 위로가 되는 부분은, 남이 보면 허세처럼 보일 만큼, 세상과 함께, 사람들과 함께 살고자 했던 날들이 있어서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3년이란 시간과 열정을 바친 것을 더 뿌듯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일으켜 세우는 마음의 디딤돌이 되어주곤 한다.


칭찬은 꼭 남이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자신이 하는 칭찬도 좋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생각한다.


젊어선 누가 묻지도 않는데 나서서 자랑할 데도 없고, 이런 일을 어디다가 자랑하려고 한 것 같아질까 봐 조용히 입 다물고 있었으나, 세월도 많이 흘러갔고, 인생 뒤돌아 보면서 혹시 나중에 손주들이 읽어 보고 배우게 될지 몰라 글로 남겨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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