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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시인의 書評] 작은 완장의 무게 – 소설 윤흥길의「완장」을 읽고
  • 이창준 기자
  • 등록 2025-12-12 18: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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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시인)

윤흥길의 단편소설「완장」은 문학사에서 ‘작은 권력의 본질’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낸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거대 담론이나 국가 권력의 폭력을 직접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일상의 가장 낮은 층위에서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탁월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주인공 임종술에게 주어진 것은 국가 권력도, 경제적 부도, 정치적 지위도 아니다. 단지 양어장 주변을 관리하는 ‘완장’ 하나다. 그러나 바로 그 사소한 상징물이 인간의 속을 뒤집고, 숨겨진 욕망을 폭로하며, 공동체의 질서를 흔든다. 작은 권력이지만, 사람을 타락시키는 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임종술은 소설 속에서 특별한 재능이나 지위를 가진 인물이 아니다. 그는 마을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평범한 농촌 남자이며, 그에게 외부 세계가 부여한 평가는 늘 미미했다. 그러나 그가 완장을 차는 순간, 그의 내면에 숨어 있던 열등감과 분노, 인정 욕구는 급격히 증폭된다. 완장은 그에게 사라졌던 ‘자기 존재감’을 돌려받는 도구였다. 그는 완장을 ‘권한’으로 읽지 않고 ‘힘’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 힘은 곧바로 타인을 향한 통제 욕망으로 변환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권력이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 침투하는지 목격한다. 권력은 본래 외부에서 내려오는 구조적 힘이다. 하지만「완장」은 권력이 개인의 내면, 특히 가장 깊숙한 열등감의 층위에서 자라나는 방식에 주목한다. 


임종술은 이전까지 자신보다 강한 존재들에게 눌려 살아왔으며, 그 억압의 기억은 완장을 차는 순간 뒤집혀 ‘약한 이들을 향한 폭력’이 된다. 윤흥길은 이를 통해 권력의 폭력성이 계층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가장 미약한 단위에서도 재생산됨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심리 묘사를 넘어서, 사회 구조 전반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문학적 장치로 읽힌다. 또한 이 작품은 심리학에 바탕 둔 작품으로 ,  ‘착각의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이기도 하다. 


임종술이 휘두르는 권력은 실체가 없다. 양어장을 감시하는 일은 마을의 생계나 안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그의 권한은 임시적이고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임종술은 완장을 ‘인정받지 못한 삶에 대한 보상’으로 착각한다. 소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실제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 심리, 즉 ‘권력의 환상’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완장은 결국 그에게 주어진 작은 장난감일 뿐이지만, 임종술은 그것을 자신의 존재를 뒤바꿀 만큼의 절대적 권력으로 오해한다. 이 착각이 키운 자의식과 오만함은 그를 고립과 몰락으로 이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임종술이 완장을 반납하는 장면이 어떤 폭력적 대가나 충격적 사건이 아닌, 극히 단순하고 무의미한 순간으로 처리된다는 점이다. 그는 완장을 벗고 나서야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윤흥길은 이 허무함을 통해 권력의 본질을 폭로한다. 권력이란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부여하는 상징과 역할의 총체일 뿐이다. 그 상징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텅 빈 자아이며, 권력으로 세운 정체성은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결국 임종술은 완장 이전의 자신으로 회귀하는데, 그 과정에서 독자는 깊은 씁쓸함을 느낀다. 이는 권력이 남기는 가장 현실적인 얼굴, 즉 ‘상실’이다.


한편「완장」은 1970~80년대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당시 사회는 군사적 질서와 감시가 일상에 깊이 침투해 있었고, 작은 권한을 가진 이들조차 상대방을 통제·감시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마을에서조차 작은 리더나 관리자들이 주변 이웃을 기강으로 억누르는 모습이 흔했다. 이 작품은 그러한 시대의 구조적 폭력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거대한 권력의 명령이 아래로 전달되면, 그 아래에서 또 다른 작은 폭군들이 생겨나는 ‘폭력의 분업 구조’를 풍자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완장」은 단순한 개인 심리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의 권력 문화 전체에 대한 문학적 비판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이 작품이 특별히 울림을 주는 이유는 시대적 맥락을 넘어 비극적 인간 본성의 한 단면을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임종술의 비극은 그가 악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제대로 돌볼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권력은 늘 강자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종종 약자의 결핍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타인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해소할 때, 욕망은 곧 폭력으로 변한다. 임종술은 그 경계를 스스로 넘었고, 완장을 통해 드러난 폭력성은 결국 그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겼다.


결국「완장」은 인간이 권력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물음이다. 우리는 누구나 완장을 갖고 싶어 한다. 그것은 지위일 수도, 인정일 수도, 혹은 타인으로부터의 존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완장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장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우리를 드러낸다. 임종술이 몰락한 이유는 완장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윤흥길은 소설을 통해 이렇게 묻는다.

“당신에게 완장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는가?”


작품을 읽고 난 뒤 남는 감정은 불편함과 씁쓸함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곧 자기 성찰로 이어진다. 


우리는 일상에서 때때로 누군가에게 작은 힘을 행사하고, 누군가에게는 힘을 빼앗기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사소한 권력에도 쉽게 흔들리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완장」은 그 사소함 속에 숨어 있는 위험을, 그리고 인간이 권력을 통해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지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유는 바로 그 정직함에 있다. 작은 완장이었지만, 그 완장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소설「완장」개요>

윤홍길이 1982년 발표한 작품으로 1983년 제28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이다. MBC에서 제작한 드라마 '완장'은 이 소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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