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산골도 능선도 마을 어귀까지도
불기둥이 쓸고 간 자리
골짜기마다 이는 바람도 흉흉하고
나뭇가지 흔들림도 검게 탄 장승이 되어
묵언의 화살촉이 된 참혹은 부질없음과 허무를
넋 놓고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천년 세월 첩첩산중 울창한 흔적이 숯덩이 되어
달빛은 휘영청인데 안식처 잃은 산짐승
앉을 자리 잃은 산새들도 빌고 빌던 산신령도 온데간데없고
잔설 녹아내린 계곡엔 검게 탄 메아리만 흐느낍니다
한순간 불길로 초토화된 주검 앞에 으깨진 요물만 남아
바다가 품어주는 실바람은 계면쩍게 불어주는데
희망의 자리매김도 내일을 새겨 놓을 수 없어
자연의 순리도 일그러진 모습으로
잿 가루에 산화된 어이없는 아림뿐입니다
울진 북면에서
김 제 권